영화를 혼자 보면 좋은 점이 많다. 같이 봤는데 재미없는 영화라도 걸리면 눈치를 봐야 하고, 영화를 보는 시간, 장소도 같이 영화를 보는 사람과 맞춰야 한다. 혼자라면 그럴 필요가 없다. 하지만 혼자 영화를 볼 때 안 좋은 점도 있다. 일단 데이트족이 득실거리는 멜로 영화는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안 좋은 점은 무서운 영화를 볼 수가 없다는 점이다. 특히 나와 같은 겁쟁이 영화광은 보고 싶은 공포 영화가 개봉하면 같이 봐줄 사람을 찾아야만 한다.

며칠 전 나만큼이나 겁이 많은 아들이 같이 보자고 청한 영화가 있었다. 바로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와 [식스 센스]이다.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은 작품성과 영화적 재미를 두루 갖춘 걸작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혼자 보기엔 다소 무서운 공포 영화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 두 가지 이유가 아들로 하여금 나에게 같이 보자고 청한 이유였을 것이다. 나야 뭐 땡큐이다. 두 영화는 극장에서 이미 관람했지만 한 번쯤 더 보고 싶었던 영화이다. 이렇게 겁 많은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손을 꼭 잡고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식스 센스]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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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 판타지로 위장한 잔혹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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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기예르모 델 토로

주연 : 이바나 바쿠에르, 더그 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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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스페인. 내전은 끝났지만 무장한 반군들이 깊은 산속에 숨어 파시스트 정권에 저항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 동화책 읽기를 좋아하는 감수성 풍부한 소녀 오필리아(이바나 바쿠에르)는 임신한 어머니인 카르멘과 함께 새아버지 비달 대위가 있는 산간 오지로 간다. 그곳은 비달 대위의 부대와 반군 간의 소규모 전투가 계속되는 위험한 곳이지만 비달 대위는 아들은 아버지 곁에서 커야 한다며 몸이 약한 카르멘을 자신의 처소로 불러들인 것이다. 뱃속의 아기에게만 관심을 가지는 새아버지 비달 대위, 그리고 나날이 허약해져만 가는 어머니 카르멘 사이에서 오필리아는 외톨이가 된다. 그러던 중 오필리아에게 요정 판(더그 존스)이 나타난다. 판은 오필리아가 사실 기억을 잃은 요정 세계의 공주이며, 보름달이 뜨는 밤까지 세 가지 임무를 완수하면 예전 기억을 되찾고 요정 세계로 돌아갈 것이라 한다. 오필리아는 세 가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게 되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장르는 단연 판타지이다. 누군가 내게 인생의 영화를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반지의 제왕 3부작]을 이야기할 것이다. 국내 개봉한 거의 대부분의 판타지 영화를 극장에서 봤다고 자부하는 나는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역시 2006년 개봉 당시 극장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다른 판타지 영화와는 다르게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는 마치 공포 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영화를 봐야 했다.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는 사실 판타지보다는 호러, 전쟁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오필리아를 요정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세 가지 임무를 부여하는 판의 외모부터가 심상치가 않다. 이 영화의 감독이 호러 영화의 대가 기예르모 델 토로라는 것을 잊지 말자. 오필리아가 수행해야 하는 세 가지 임무 또한 섬뜩하기만 하다. 징그러운 벌레가 득실거리는 나무의 속으로 들어가 괴물 두꺼비를 처치하고 뱃속에 있는 열쇠를 가지고 와야 하는 첫 번째 임무부터가 기괴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공포는 두 번째 임무에서 클라이맥스를 달린다. 두 번째 임무는 아이를 잡아먹는 괴물이 있는 방에 가서 칼을 찾아오는 것. 판은 절대로 진수성찬이 차려진 괴물의 식탁을 손대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언제나 오필리아는 판의 경고를 무시하고 괴물의 식탁에 있던 포도알을 먹어 잠든 괴물을 깨운다. 이 장면에서 괴물의 모습도 공포스럽지만 괴물이 뒤뚱거리며 오필리아를 쫓던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올 정도였다. 나와 함께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를 보던 아들은 오필리아가 포도알을 먹는 장면을 보며 '도대체 왜?'라며 오필리아에게 화를 내더라. 나도 같은 심정이었다.

이 영화가 공포스러운 이유는 비단 판타지 기괴한 캐릭터들 때문만은 아니다. 비달 대위를 비롯한 현실 세게의 캐릭터들도 공포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특히 비달 대위는 사로잡은 반군에게 잔혹한 고문을 하고 가차 없이 총으로 쏴 죽이는 등 어쩌면 아이를 잡아먹는 괴물보다 더욱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영화 후반부 비달 대위의 하녀인 메르세데스가 칼로 비달 대위의 입을 찢어버리는 장면도 나온다. 이쯤 되면 2006년 개봉 당시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를 보기 위해 어린 자녀들과 함께 극장을 찾은 부모들의 난감함이 이해가 된다.

국내 개봉 제목은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이지만 사실 오필리아의 임무 중에서 열쇠는 단 한 개만 나온다. 첫 번째 임무에서 괴물 두꺼비의 뱃속에서 찾은 바로 그 열쇠가 유일한 열쇠이다. 그리고 이 열쇠는 두 번째 임무인 아이를 잡아먹는 괴물의 방에서 칼을 찾을 때 쓰인다. 두 번째 임무에서 찾은 칼은 세 번째 임무에서 쓰이는데, 세 번째 임무는 요정 세계의 문을 열기 위해 죄 없는 순결한 사람의 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판은 갓 태어난 오필리아의 남동생을 희생양으로 쓰려 하지만 오필리아는 이를 거부한다. 그리고 오필리아는 뒤늦게 쫓아온 비달 대위의 총에 맞아 쓰러진다. 오필리아가 죽으면서 흘린 피는 요정 세계의 문을 열게 되고, 오필리아는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요정 세계의 공주가 된다.

결말의 여운이 대단하다. 오필리아의 죽음은 각기 다르게 해석할 수가 있다. 현실 세계에서 오필리아는 비달 대위에게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판타지 세계에서 오필리아는 요정 세계의 공주로 돌아간다. 기왕이면 오필리아가 원했던 대로 요정 세계의 공주로 돌아갔다는 결말을 받아들이고 싶다. 영화 자체가 끔찍했던 만큼 결말만이라도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를 본 아들은 '이게 판타지 영화예요? 이건 전쟁 영화예요.'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건 맞다. 영화의 재미, 만듦새와는 별도로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가 판타지 영화라고 하기에 애매하다. 하지만 판타지 영화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가 걸작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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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 센스] - 반전 영화의 교과서. 23년 만에 봐도 대단한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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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M. 나이트 샤말란

주연 : 브루스 윌리스, 할리 조엘 오스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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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심리학자 말콤 크로우(브루스 윌리스)는 시에서 그동안의 공로에 대한 상을 받고, 아내와 함께 이를 축하한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말콤의 집을 무단 침입한 옛 환자 빈센트와 마주치게 된다. 말콤의 잘못된 진단으로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았던 빈센트는 말콤에게 총을 쓰고 자살한다. 1년 뒤 말콤은 빈센트 사건의 충격으로 슬럼프에 빠지고 아내와의 관계도 소원해진다. 그가 심기일전해서 맡은 새 환자는 죽은 이를 보는 소년 콜(할리 조엘 오스먼드)이다.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던 콜은 말콤의 노력으로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두 사람은 함께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그러던 중 콜은 말콤에게 충격적인 비밀을 알려주는데...

몇 개월 전 아들이 디즈니 플러스에서 볼만한 영화 몇 편을 추천해 달라고 했었다. 나는 여러 편의 디즈니 영화들을 추천하면서 [식스 센스]는 꼭 봐야 할 걸작이라고 엄지 척을 날려 주었다. 그때 내가 아들에게 [식스 센스]가 호러 영화라고 말을 안 해줬었나 보다. 이번에 나와 같이 [식스 센스]를 보면서 아들은 '이 영화를 나 혼자 봤으면 어쩔 뻔했어요?'라며 내게 항변했다. 뭐 아들이 학교 가는 지하철 안에서 [식스 센스]를 봤다면 비명 몇 번 지르고, 노트북을 바닥에 떨어뜨렸을지도...

[식스 센스]가 국내 개봉한 것이 1999년이니 무려 23년이 된 영화이다. 아직도 나는 [식스 센스]가 개봉했던 세기말 대한민국의 풍경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당시 [식스 센스]의 반전은 화제가 되었었는데, IMF의 시련을 겪던 우리 국민들은 [식스 센스]의 대단한 반전을 스포 하며 시련을 이겨냈다.(?) 나 역시 영화를 보기 전 매표소에서 영화표를 끊기 위해 극장 앞에서 줄을 섰다가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래.'라며 고함을 지르고 도망치는 스포일러에게 당했었다. 그때 처음 나는 스포일러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식스 센스]는 [유주얼 서스펙트]와 더불어 영화 역사상 최고의 반전으로 손꼽힌다. (개인적으로 나는 [디 아더스]를 포함시켜 이들 영화를 3대 반전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23년 만에 다시 본 [식스 센스]의 반전은 여전히 대단했을까? 대답은 YES이다. 반전을 모르고 본다면 콜이 말콤에게 '아저씨도 귀신이에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억지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 말콤은 콜의 어머니, 말콤의 아내와 함께 있는 장면이 여러 번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전을 알고 본다면 그 장면들이 교묘하게 편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콜을 제외한 그 누구도 말콤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말콤이 아내에게 여러 번 말을 걸지만 아내는 이를 무시한다. 반전을 모르고 본다면 이 장면이 빈센트 사건으로 인하여 말콤과 아내의 소원한 관계를 표현한 것이라 생각을 하겠지만 사실 말콤이 귀신이기 때문에 말콤의 아내는 말콤을 볼 수도, 말콤의 말을 들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장면들은 [식스 센스]의 반전을 알고 두 번째 영화를 관람할 때 더욱 짜릿하게 느낄 수가 있다.

내 기억과는 달리 [식스 센스]에서 귀신은 거의 중반 이후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여전히 나를 두렵게 했던 장면이 있었으니 콜의 은신처인 텐트를 제치고 소녀 귀신이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전까지 콜의 텐트는 귀신으로부터 안전한 은신처로 여겨졌었는데, 소녀 귀신이 이를 깨트린 것이다. 이 소녀 귀신은 식탁 밑에서 콜의 다리를 낚아채며 또다시 나를 놀라게 했다. 이 장면은 1999년 극장에서 영화를 봤던 당시에도 무서웠는데 2022년에 다시 봐도 여전히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아들에게 [식스 센스]가 [유주얼 서스펙트]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반전 영화라고 소개했다. 아들에게 [유주얼 서스펙트]도 같이 보자고 미끼를 미리 던져 놓은 셈. 그나저나 [유주얼 서스펙트]를 보고 나면 [디 아더스]도 봐야 할 텐데, [식스 센스]만큼이나 무서운 [디 아더스]를 과연 아들이 보려고 할는지는 미지수이다. 그래도 덕분에 [식스 센스]를 23년 만에 다시 볼 수가 있어서 즐거웠다. 역시 같이 영화를 봐주는 짝꿍이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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