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다닐 때 성악설과 성선설을 배웠었다. 나는 순자가 주장한 사람의 타고난 본성은 악하다는 성악설보다는 맹자가 주장한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는 학설을 더 믿는다. 어렸을 적에 우리는 선했지만, 잘못된 성장 환경과 사회 경험으로 인하여 점점 때가 묻으며 악해지는 것이라고 아직도 믿고 싶다. 우리의 본성이 날 때부터 악하다고 한다면 이 얼마나 절망적이란 말인가.

여기 두 편의 한국 영화가 있다. 사실 내가 그다지 선호하는 장르의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꼭 봐야만 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있는 부끄러운 사건을 담은 영화이니까... 이 두 영화를 보다 보면 어쩌면 순자의 성악설이 맞는다는 절망적인 생각도 든다. 학교 폭력 가해자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 사건을 은폐, 조작하려는 추악한 몸부림을 그린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와 한때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담은 [공기살인]이 바로 나를 절망에 빠뜨린 영화이다. 인간은 얼마나 더 이기적이고, 뻔뻔하고, 잔인해질 수 있을까?

​

​

​

​

​

​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 부모 된 입장에서 가장 잔인한 질문을 던져 놓는다.

​

​

감독 : 김지훈

주연 : 설경구, 천우희, 오달수, 문소리

​

​

명문 한음 국제중학교에서 학생 김건우가 같은 반 친구 네 명의 이름을 적힌 편지를 담임인 송정욱(천우희) 교사에게 보낸 채 자살을 시도한다. 편지에 적힌 네 명의 학생은 병원 이사장 도지열(오달수)의 아들 윤재, 전직 경찰청장 박무택(김홍파)의 손자 규범, 한음 국제중학교 교사인 정 선생(고창석)의 아들 이든, 그리고 접견 전문 변호사 강호창(설경구)의 아들 한결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들의 부모들은 자신의 권력과 재력을 이용해서 사건을 은폐하려 하고, 그 중심에는 강호창과 도지열이 있다. 하지만 송정욱의 폭로로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자 도지열은 한결을 희생양으로 지목한다. 그 와중에 강호창은 한결과 건우에 대한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되는데...

아들이 어렸을 적에 나는 유괴를 소재로 한 영화를 피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서 유괴라는 소재는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도 공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들이 중학교에 올라가고 나니 이제는 학교 폭력 소재의 영화가 더 공포스러워졌다. TV에서 학교 폭력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나는 아들을 앉혀놓고 혹시 학교에서 괴롭히는 사람이 있는지 묻곤 했다. 맞다. 최악은 내 아들이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라면?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학교 폭력 가해자 부모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자신의 아들이 학교 폭력의 가해자가 되어 사회에 낙인이 찍히는 것을 막으려고 몸부림친다. 처음엔 그러한 그들의 시도가 꽤 성공적인 듯 보였다. 피해자인 건우는 의식불명 상태이고, 유일한 증거인 건우의 편지는 없애 버렸다. 이대로 건우가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마무리하면 그들의 계획은 성공한다. 그런데 건우가 결국 사망하고, 송정욱이 양심선언을 하며 그들의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그러자 그들은 또 다른 악마적인 계획을 세운다. 한결을 모든 학교 폭력의 주범으로 조작을 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강호창이다. 그는 변호사이긴 하지만 접견 전문 변호사로 같은 변호사들에게도 무시를 당하는 신세이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이다. 자신이 무시를 당해도 참고 견딜 수가 있었던 것은 한결을 명문 학교에 보내서 사회적으로 성공시킴으로서 자신처럼 무시당하지 않게끔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법 지식을 총동원하여 건우의 사건을 은폐한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점점 악화된다. 급기야 한결이 주범으로 지목되자 그는 건우이 사건을 좀 더 깊게 파헤친다. 그리고 알게 된다. 한결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였음을...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강호창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학교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부모의 심정을 동시에 느끼게 만든다. 이 얼마나 악마적인 전개라는 말인가. 하지만 강호창은 무너지지 않는다. 한결에게 있어서 최후의 보루인 자신이 그대로 무너지면 한결은 영원히 학교 폭력의 가해자 누명을 쓴 채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화 후반, 강호창이 거짓 증언을 하려는 남지호(노정의)가 있는 곳을 밝혀내는 장면은 거의 첩보 영화의 스릴을 안겨준다. 결국 강호창은 남지호의 위증을 밝혀내고, 한결의 누명을 벗겨 낸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잔인함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안심하는 순간 벌어진다. 만약 이대로 영화가 끝났다면 건우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고 한결이 억울한 누명을 벗는 해피엔딩일 것이다. 그러나 김지훈 감독은 관객에게 묻는다. 과연 학교 폭력 사건에서 해피엔딩은 존재할 수 있을까? 그렇다. 한결의 누명이 벗겨졌지만 건우는 죽었고, 건우의 어머니인 안애숙(문소리)는 하나뿐인 자식을 억울하게 잃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과연 한결은 그저 누명을 쓴 피해자라고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영화 마지막 장면의 반전은 억지스럽다. 하지만 진실이 무엇이건 내 아들만 무사하면 된다는 부모의 악마적인 이기심을 잘 드러낸다. 영화 마지막 장면, 강호창의 얼굴은 얼마나 추악한가. 그런데 내가 만약 강호창이었다면 강호창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가 있을까? 이 영화의 진정한 잔인함은 바로 그것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아들을 위해 진실을 밝히는 아버지 강호창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어 놓고, 끝에 가서 강호창의 추악함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관객에게 질문을 한다. 당신은 강호창과 다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그 잔인한 질문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

​

​

​

​

​

​

[공기살인] - 돈만 되면 사람 몇 명쯤 죽어도 상관없는 천민자본주의의 민낯

​

​

감독 : 조용선

주연 : 김상경, 이선빈, 윤경호

​

​

한 가정의 가장이자 의사인 정태훈(김상경)은 어린 아들이 원인 모를 급성 폐 질환으로 수술을 받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인 한길주(서영희)마저 급성 폐 질환으로 사망하자 처제이자 검사인 한영주(이선빈)와 함께 폐 질환의 원인을 조사한다. 태훈의 아내, 아들과 같은 원인 모를 급성 폐 질환 환자가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된 태훈은 그 원인으로 다국적 기업 오투의 제품인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피해자를 모아 민사 소송에 돌입한다. 하지만 오투도 차기 CEO 후보인 서우식(윤경호)의 진두지휘 아래 초호화 변호사들을 꾸려 법적 대응을 한다. 오투의 계략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던 태훈은 결국 어려운 선택을 하게 되는데...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수도 없이 많은 어처구니없는 참사를 목격했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 백화점 붕괴, 세월호 침몰 등. 모두 우리가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사건들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어처구니없는 사건은 바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다. 다른 사건들이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된 인재인 반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그저 돈만 밝히는 대기업의 횡포 속에서 무고한 국민들이 희생된 살인사건이기 때문이다. 2011년 4월부터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환경부에 피해 신고된 것만 1,740명, 특별 조사 위원회 추정치로 약 20,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최대 가해 업체로 지목된 옥시의 신현우 대표가 2018년 대법원에서 징역 6년형이 확정되었고, 2019년에는 SK 케미칼 홍지호 대표 등 8명이 업무상 과실치사 및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되며 8년 만에 검찰 수사는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내가 이 사건을 가장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지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급성 폐 질환을 유발한 가습기 살균제 제품인 '가습기 메이트'를 나 역시 구매했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임산부,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서 가습기는 필수였고, 가습기 내의 곰팡이, 세균을 완전히 살균한다고 광고한 가습기 살균제는 가습기가 있는 집이라면 꼭 있어야 하는 제품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화학제품은 몸에 안 좋다는 장모님의 혜안 덕분에 '가습기 메이트'는 거의 사용하지 안은 채 버렸다. 그때 만약 내가 사 온 '가습기 메이트'가 사용되었고, 그로 인하여 아내와 아들이 급성 폐 질환을 앓게 되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 끔찍한 살상용 화학무기를 가습기 살균제로 둔갑시켜 국민들에게 판매를 한 것일까? 답은 하나뿐이다. 돈 때문이다. 물론 그들도 그로 인하여 수천, 아니 수만 명의 사람들이 죽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인간에게 약간 유해하지만 그 피해는 미미할 것이고, 그 대신 돈을 긁어모을 수 있으니 가습기 살균제의 주원료의 유해성을 알고도 모르는 척했을 뿐이다. 물론 이것은 대기업의 잘못뿐만은 아니다. 이를 허가해 준 공무원 또한 공범자이고, 이를 알고도 눈감아준 관련 학계 학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전형적인 천민자본주의의 추악한 모습이다.

사실 충격적인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영화의 만듦새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주요 인물이 의사와 검사라는 것부터는 안일하다. 실제 피해자들이 스스로 발로 뛰며 밝혀내고, 힘겨운 법적 투쟁을 벌이는 과정을 피해자의 남편인 의사 태훈과 피해자의 동생인 검사 영주로 단순화시켜 버렸다. 영화 후반 반전은 억지스럽기까지 했다. 물론 영화의 극적 재미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너무 작위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영화가 그려낸 한국 사회의 추악한 모습은 효과적으로 나의 분노를 이끌어 냈다. 수천만명의 제품 사용자 중에서 고작 수천 명 죽은 것은 교통사고와 다를 것이 없다는 오투 대표 조선오(장혁진), 진실 따위는 상관없이 수십억의 수임료만 탐내는 지검장 출신 전관 변호사 정경한(송영규), 오투의 정치 자금 약속에 정치적 압력을 가하는 정치인 박지상(장광), 오투의 연구소 지원금이 탐나 거짓 실험 자료를 제출하는 한국대 교수(실제로는 서울대), 그리고 책임 회피에 급급한 국가기술표준원 식약처, 환경부, 보건복지부 공무원들까지... 어디에서 많이 본 광경들이 영화에서 펼쳐진다. 작위적이라고 혹평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암담한 현실이 안타깝다.

영화가 끝나고 간담이 서늘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참사들은 어쩌면 내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다. 성수대교가 붕괴되었을 때 내가 사는 동네의 여고생들 다수가 사망했었고, 내가 다니던 회사 옆에는 삼풍 백화점이 있었다. 그리고 한때 회사 야유회를 배 타고 제주도로 가는 것을 검토했던 적도 있었다.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들은 운이 좋지 않아 참사 현장에 있었고, 피해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나의 생사를 운에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이런 사회적 참사에 관심을 기울이고, 관련자에 대한 철저한 처벌을 요구해야 하는 이유이다. 인재로 인한 참사가 다시는 벌어지지 않기를... 그래서 운 없이도 무탈하게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기를...

​

​